유대인, 발명된 신화 - 기독교 세계가 만들고, 시오니즘이 완성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
기독교도는 유대인을 창조했고,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인을 창조했다.
"우리"라는 개념은 "저들"이 있어야 성립한다.
한국사회에는 지금"우리"와 "저들"의 구분이 없는가?
이 책의 표지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만들어진 신화가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유대인의 삶에서 보여주고자 한다.
1. 유대인 민족성의 출발과 확립
성경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이 책에서는 성서 고고학자 등 다양한 시각에서 성서를 고증하려 한다.
암흑기인 중세시대에는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근현대를 거쳐 계속 이루어지는 작업의 하나이다.
성경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다.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교의 근간을 이루는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묶으면서 배제될 것은 배제된 상태로 만들어진 책이다.
성서의 근간은 어디일까?
이것은 성서를 읽다 보면 생각나게 되는 의심이다.
구약 성경을 신화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실로 볼 것인가?
성서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성서는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이다.
유발하라리의 호모사피엔스에서 사피엔스 종의 특징 중 하나인 허구, 상상을 만들어내는 능력.
바로 이 능력을 통해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그 이데올로기 안에서 하나의 부족,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고대 인간은 자연의 모든 것을 신격화하였다.
사물에 인격을 부여한 것이며, 인격을 신격화시킨 것이다.
같은 신을 모신다는 것은 동질화를 형성하고, 동질화 집단이 클수록 힘의 쏠림 현상은 심해지며,
힘이 클수록 하나의 신앙으로써 지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신들을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조화를 추구하였으니까.
페르시아 지방에서 발원한 조로아스터교는 이 세계관을 무너뜨린 종교 중 하나이다.
선과 악의 대립, 즉 이분법을 통해 사람들이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하게 만들었으며,
이것을 만들기 위해 상반되는 저것을 만들어 내고 배척을 하게 하는 생각을 심어 주었다.
결정을 하는 것은 늘 여러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 저것이라는 두 가지를 선택하게 한다면, 확률은 50대 50이다.
이 얼마나 쉬운 것인가?
여러 요소를 검토할 일이 없고, 집중력을 분산시킬 필요 없이 효율성을 중시한 아주 심박한 종교의 탄생이었다.
하나의 종교가 만들어지면 초기에는 종교 체계를 정립한다.
종교체계가 정립이 되면, 전파를 시작한다.
전파의 방법도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가장 아랫사람부터 시작한다.
기존 기득권층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파고든다.
두 번째는 기득권층부터 시작한다.
기득권층을 새롭게 묶는 이념이 되며, 그들과 피기득권층을 구분하는 장식품 중 하나가 된다.
이렇게 조로아스터교는 세력을 얻었다.
유대교의 탄생은 바빌로니아 유수 때 끌려간 엘리트 계층에서 시작을 하였다.
바빌로니아는 셈족의 한 분파에 의해 생성된 국가이다.
작은 도시에 불과했던 바빌론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통일하면서 기존 여러 도시국가에서 믿고 있던 지방신을
바빌론 지역에서 믿고 있던 마르둑을 주신으로 하여 통합해 버렸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력 계층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물을 보면서 그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들은 흐트러지려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간직하기 위해 주변 자료를 모아 자신들의 세계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를 시작으로 유대민족의 정체성이 시작되었다.
2. 새로운 종교 기독교의 시작과 확립
유대인의 정체성은 유대교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유대교의 율법과 토라를 기반으로 하는 기득권이 생겨났다.
여기에 반기를 든 것이 기독교이다.
진입하기 어려운 유대교를 모든 사람이 쉽게 믿을 수 있는 보편 종교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 시대의 유대교가 폐쇄된 종교였다면, 유대교를 기반으로 새롭게 생성된 기독교는 개방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종교의 전파는 위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아래에서 시작하는 것이 쉽다.
이미 기득권층이 되어 있는 사람보다 가난하고, 힘들고,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에서 다가가기 훨씬 편하다.
전파를 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고, 그 종교는 힘을 얻게 된다.
사람의 힘으로 힘을 얻게 되는 종교는 기득권을 끌어들인다.
우매한 사람이 모여 있는 종교 내에서 상위 레벨로 가기 쉬워진다.
그러면 그 종교 내에서 세력을 만들 수 있고, 그 세력을 바탕으로 외부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
쉬운 길을 택한 기독교는 가나안 땅에서 전파가 쉽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주변 지중해 근방으로 전도를 나간다.
그리고, 주변에 세력을 확보한다.
기독교를 정립한 사람은 사도 바울로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바울은 지금의 터키의 명문가 출신 유대인이다.
그리스로마 학문과 유대 율법에도 탁월한 식견이 있는 바리새파였다.
기독교를 로마에 전파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인 바울은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의 글은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에 영향을 주었다.
계층과 성별에 차별이 없었던 예수의 가르침에 바울은 자신의 생각을 녹여낸다.
그것은 계급과 성차별이었다.
여자에 대한 차별을 고린도전서에 언급하였으며,
군대처럼 상명하복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남성들만의 교단을 만들었다.
이것이 교회이다.
그리고 정통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
바울의 전도는 죽음, 부활, 종말이라는 단어로 기독교의 빠른 전파를 이루었다.
기독교로 개종하면 부활하여 천국으로 간다고 선전하였다.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신분세탁의 종교를 만든 최초이다.
예수의 가르침이 신약성경에 모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배제된 것도 있을 것이고, 그 시대상에 맞게 재구성되었을 수 있다.
3. 영지주의와 다툼에서 이기다.
영지주의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앎을 의미한다.
한 번쯤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지주의의 목표는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서 스스로 예수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불교와 유사하다.
오로지 문자로 기록한 것만 신성한 것으로 여겼던 바울의 기독교가
영지주의를 몰락으로 이끌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 당시 로마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때문이다.
군대를 이끌었던 황제답게 군대조직과 같은 체계를 가진 바울의 정통교단을 좋아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기독교는 유럽을 지배한 로마제국에서 쉽게 확장할 수 있었다.
4. 의심과 비판적 사고를 못하게 하다.
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종교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의심과 비판적 사고를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뜻은 다를 수 있기에 비판도 가능하고, 의심도 가능하다.
그러나, 신의 뜻이라고 한다면 불완전한 인간이 감히 생각하고 판단할 수 없는 지고한 위치를 가지게 된다.
사람의 비판적인 사고를 허락하지 않는다.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한다.
5. 유대교와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원인
사회 경제적으로 글을 읽을 수 있고, 토라를 기반으로 깊은 사고를 하는 유대인은 유럽 사회를 움직이는 한 축이었다.
유대인을 제외한 다른 민족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유대인에 대한 억압은 유대인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종교로 생성된 기독교에 원인이 있기도 하다.
유대인은 기독교의 예수를 죽인 원수인 것이다.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중요한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었다.
태생이 유대인이 아닌, 유럽에 거주하는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믿는 믿음의 기반을 죽인 유대인 소멸해야 할 민족이었다.
6. 같은 하나님을 믿는 서로 다른 형제들
하나님을 믿는 종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이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왜 서로 싸우는 것일까?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내주어라 라는 말이 있는데,
왜 서로 싸우는 것인가?
이것은 하나님 보다 중요한 예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들의 정체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예수를 선지자 중의 하나로 본다.
물론, 6년 전 일반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교 중 극히 일부는 예수를 기독교의 창시자로 생각한다.
이슬람은 마호메트처럼 사람으로 본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하나님과 동급으로 본다.
이것이 무너지면 기독교의 기반이 없어지는 것이기에 필사적으로 사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7. 이 책은 유대인의 태생부터 차별과 억압에 대한 이야기를 시대적 흐름으로 기술한다.
그들의 삶 속에서 받았던, 아직도 아물지 않은 그들의 역사를 훑어본 책이다.
상대적인 개념을 기반으로 이분법적 사고가 가져오는 위험성에 대한 의미를 내제하고 있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글을 쓴 작가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종교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마음의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에게 의지처가 되어 주는 종교가
그 종교를 움직이는 사람에 의해서 거짓과 악행을 하는 명분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반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종교를 믿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냥 믿는 것보다 그 종교가 가진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고, "왜"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길 바란다.
교회를 따르지 말고,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따르길 바란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교회는 집 주변에 가득한데, 왜 꼭 굳이 멀리 떨어진 기존 다니던 교회에 가는지 잘 모르겠다.
자신의 영적인 삶의 목표는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깊이 솔직히 진정으로 생각해 보길 바란다.
항상 같은 구절, 설명하기 편한 구절만 읽게 만들고, 이것만 가지고 목회를 하지 말고,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목회자가 나왔으면 한다.
물론, 어렵겠지만.
전도하는 방법을 좀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왜 항상 2,000여 년 동안 오지 않는 예수가 곧 오신다고 하면서, 종말이 가까웠다고 말하고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간다고 하는지...
전도하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발전이 없다.
성경 구절 중 나오는 이야기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옆의 강도가 물었다.
나도 당신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예수의 대답은 이렇다.
오늘 너는 나와 천국에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명분인가.
잘못을 저질러도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서 회개를 하고,
죽기 전에 예수를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쉬운 방법론은
사커구치 안고의 타락론에 나오는 집단적 타락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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