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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시대 - 이슬람과 우리의 새로운 비전에 관하여

by 나노그램 2024.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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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시대 이스라엘 편을 요약했다.

축의 시대 마지막 개화는 이슬람에서 맺어진다.

그리고 저자는 축의 시대를 통해 우리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축의 시대 마지막을 요약해 본다.

 

1. 이슬람

 

1) 축의 시대 마지막 개화는 서기 7세기 아라비아에서 이루어졌다.

- 예언자 무함마드가 신성한 영감을 받은 경전 <쿠란>을 하자즈 사람들에게 가져온 것이다.

- <쿠란>은 새로운 계시라 주장하지 않고, 그저 인류의 아버지이자 첫 번째 예언자인 아담에게 주어진 메시지를 다시 말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또한 무함마드가 과거의 예언자를 대신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원시 신앙으로 돌아가려고 왔다고 주장했다.

-<쿠란 >의 기본 메시지는 교의가 아니라 자비심을 실천하라는 명령이다.

 

2) 무함마드는 축의 시대의 모든 위대한 현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가치들이 무너지는 폭력적인 사회에 살았다.

- 서기 610년경 무함마드가 첫 계시를 받았을 때 많은 아라비아인은 그들의 만신전의 최고신인 알라가 유대인과 기독교의 하느님과 똑같다고 확신했다.

- 무함마드의 첫 가르침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 <쿠란>에서 하느님은 이슬람교도에게 '이전 계시의 사람들'을 예의 바르게 대접하고 존경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이 가르침은 무함마드가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이슬람 제국의 정책으로 유지되었다.

- 서기 8세기 중반까지 이슬람 개종은 권장되지 않았다.

- 이슬람은 아라비아인의 종교라고 생각했다.

 

3) 무함마드의 종교는 '이슬람(내어놓다.)'이라고 부른다.

- 이슬람교도(무슬림)는 하느님에게 자신의 삶을 존재론적으로 내어놓은 사람들이다.

- 무함마드가 그의 개종자들에게 하루에 몇 번씩 기도를 하며 엎드리라고 했을 때, 이것은 아라비아인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 그들은 군주제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노예처럼 땅에 엎드리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엎드리라는 것은 날뛰고, 우쭐하고, 젠체하고, 언제나 자신에게 관심을 끌려고 하는 에고를 넘어서라는 것이다.

 

4) <쿠란>은 방어 전쟁만 허락했다.

- <쿠란>에서는 전쟁을 '무서운 악'이라고 비난하며, 이슬람교도가 먼저 적대행위를 시작하는 것을 금지했다.

- 일단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이슬람교도는 상황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전심을 다해 싸우고, 적을 힘차게 쫓아야 했다.

- 그러나, 적이 평화를 간청하는 순간, 적대행위는 중단해야 했고, 이슬람교도는 적이 제시하는 어떤 조건이라도 받아들여야 했다.

 

5) '지하드'라는 말은 '성전'이라는 뜻이 아니다.

- 일차적 의미는 투쟁이다.

- 때로는 싸우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전쟁을 종속적 지위에 놓은 것은 중요하고 매우 영향력이 큰 전통이었다.

- 무함마드는 전투에서 돌아오면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우리는 지금 작은 지하드(전쟁)를 떠나 더 큰 지하드로 돌아가고 있다. 즉 우리 사회와 우리 마음을 개혁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다급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 <쿠란>에 따르면 평화의 정신은 그들을 토라나 복음과 연결해 주는 것이었다. 

 

2. 이 위험한 시대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1) 축의 시대 모든 종교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높은 이상에 맞추어 살지 못했다.

- 이 모든 종교에서 사람들은 배타성, 잔혹성, 미신, 잔혹 행위의 피해자가 되었다.

- 이 시대의 현자들은 모두 폭력적 사회에서 살았다.

 

2) 어떤 사회에 전쟁과 테러가 만연하면 이것은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끼친다.

- 증오와 공포는 그들의 꿈, 관계, 욕망, 야망에 스며든다.

- 축의 시대 현자들은 이것을 극복하는 것을 돕기 위해 자아의 더 깊고, 덜 의식적인 수준에 뿌리를 둔 교육을 만들어냈다.

- 현자들은 우리가 체계적으로 완전히 다른 심리적 태도를 계발하며 다른 의식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3) 축의 시대 현자들은 이기심을 버리고 자기의 영성을 계발하는 것을 그들 의제의 맨 위에 두었다.

- 그들은 사람들이 초월해야 하는 대상인 탐욕, 자기 중심주의, 증오, 폭력에 집중했다.

 

4) 공중의 담론을 지배해 온 종교는 제도적 자기 중심주의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 나의 신앙이 너의 신앙보다 낫다.

- 사람들은 신앙에 자신을 던져놓으면 시비를 걸고, 간섭을 하고, 불친절해질 수도 있다.

- 근본주의적 종교는 우리 시대의 폭력을 흡수하여 극단화된 전망을 발전시켰다.

- 근본주의자들은 초기 조로아스터 교도처럼 인류를 두 적대적 진영으로 나누고, 신자들의 진형이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에 대항하여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다고 본다.

 

5) 세상의 모든 종교가 이런 유형의 전투적 신앙의 분출을 목격해 왔다.

- 축의 시대는 그 반대다.

- 축의 시대의 종교적 탐구는 모두 자기 시대의 전례 없는 폭력으로부터 물러나는데서 출발했다.

- 인도에서는 제의 개혁가들이 희생 경쟁에서 갈등과 공격성을 빼내면서 시작되었다.

- 이스라엘에서는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유대인이 바빌로니아로 강제 추방을 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중국에서는 전국시대에 시작되었다.

- 그리스에서는 축의 시대 이상에 주목할 만한 기여를 했지만 궁극적으로 종교적인 변화는 없었다.

 

6) 이 시대에 우리의 대응은 어때야 하는가?

- 축이 시대 현자들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조언을 했다.

ㄱ) 자기비판이 있어야 한다.

- 먼저 자신의 행동을 살피고, 그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한다.

- 우리는 다른 종교에게 깨끗한 행동을 하라고 시끄럽게 떠들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의 전통, 경전, 역사를 살펴야 한다.

- 자신을 개혁하기 전에는 남의 개혁을 바랄 수 없다.

ㄴ) 우리는 실천적이고 효과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 자신의 전통에서 공격성과 마주했을 때 그런 것이 없는 척하지 않고, 종교를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7) 제도의 완결성을 보존하려면 불편한 경전과 역사적 참사들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학자, 성직자, 일반 시도가 어려운 텍스트를 공부하고, 탐색하는 질문을 던지고, 과거의 결함들을 분석해야 한다.

- 동시에 우리 모두 자비로운 전망을 회복하고 그것을 혁신적이고 영향력 있는 방식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8) 우리에게는 새로운 전망이 필요하다.

- 많은 현자들이 기록된 경전이라는 관념에 반대한다.

- 이것은 통속적이고 피상적인 앎을 낳을 것이라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즉각적인 의사소통의 사회에 살기 때문에 종교도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싶어 하며, 그것을 즉시 파악하지 못하면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 축의 시대 현자들은 진정한 앎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꾸준히 설명했다.

- 이해는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우리의 마음에서 이미 받아들였던 관념들이 비워졌을 때에야 비로소 찾아온다.

 

9) 우리는 큰 공포와 고통의 시기에 살고 있다.

- 축의 시대는 우리에게 인간 삶의 피할 수 없는 사실인 고난과 직면하라고 가르쳤다.

- 우리 사진의 고통을 인정할 때에만 타인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삶의 진실은 두카다.

- 사방에서 밀려들어와 우리 의식을 공격하는 슬픔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인 탐구를 시작할 수 없다.

- 현자들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용적인 사람들이었다.

 

10) 우리 세계관의 중심에서 자기를 비우려면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 타자에 대한 존중을 실용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평화로운 지구 사회를 위하여 불가결할 것이며, 어쩌면 악당 국가를 개혁하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 존중은 진실해야 한다.

 

 

** 축의 시대 짧은 용어 설명

1. 일신 숭배

- 그리스어에서 파생

- 단일한 신을 섬기는 것을 가리킨다.

- 일신 숭배는 신이 하나만 존재한다고 믿는 유일신교와 같지 않다.

- 일신 숭배를 하는 사람은 여러 신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그 가운데 한 신만 섬기겠다고 결정할 수도 있다.

- 이스라엘 예언자들은 아마 다른 신들로 존재한다고 믿었을 테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만 섬기고 다른 신의 예배에는 참가하지 않기를 바랐다.

 

2. 힌네니 (헤브라이어)

-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는 말

- 신 앞에 자신이 온전히 존재하며 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이스라엘 예언자와 족장들의 외침

- 복종과 헌신의 표현이다.

 

<축의 시대를 읽고>

 

종교와 철학의 관점에서 역사흐름을 살핀 책이다.

욕망과 집착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축의 시대 현자들의 고뇌와 탐구, 노력이 보인다.

그들이 처한 환경은 폭력이 얼룩진 사회였으며, 종교 제의도 인간이 동물에 가한 폭력이었다.

하루의 생존이 불분명하고, 내일이 불투명한 생활에서 현자들은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책의 종교가 세상을 지배한다.

사실과 허구가 섞여 우리의 생각과 현실을 지배한다.

우리 시대의 수많은 우상들이 넘쳐난다.

경전에 대한 집착, 제의에 대한 집착, 따라 하기에 대한 집착, 연예인에 대한 집착, 물건에 대한 집착 등등

수많은 집착 속에서 맑은 정신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생각하기는 실종이 되어 가고 있다.

보다 간편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생각하기를 멈추고, 보다 쉬운 방법을 찾고, 쉽게 질려한다.

나와 너의 싸움이 있고, 집단과 집단의 싸움이 있고, 사회와 사회의 싸움이 있고, 국가와 국가의 싸움이 있다.

이것을 조장하는 것은 다변화한 사회라고 말하고 이분법적으로 분리를 하려는 숨은 사람들.

또 그러한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들어 그 사실조차 모르는 조종당하는 사람들.

 

한 사람이 있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있다.

사랑으로 자비로 인자함으로 존중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이용하여

높은 위치로 올라가려고 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은 여기서 한 사람이다.

극소수의 다른 사람으로 인해 대분분의 한 사람은 피해를 보게 된다.

한 사람이 피해를 본다면

피해를 본 사람이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인가?

 

저자가 제시한 공감과 존중의 경계선은 어디까지이며,

한계선은 어디까지일까?

 

역사서이지만 철학의 맛을 조금 보게 하는 책이고, 

철학서이지만 종교의 색채를 나타내는 책이다.

저자는 종교의 원산지를 비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분법적 생각을 싫어하면서도 이분법적일 수밖에 없는 표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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