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는 책의 제목은 정확한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사회현상, 언어, 정치 등 외부 환경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찾아 떠나는 대담과 각자 강의 및 인터뷰인지
아니면 1971년 네덜란드 TV에서 이루어진 푸코와 촘스키의 토론에서 사회자의 질문 중
인간본성에 관한 첫 질문 때문에 책 제목이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이 책의 제목이 '정의, 권력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책 표지 뒷부분에 보면 이렇게 쓰여 있다.
1. 경험이나 외부 영향과는 무관한 '타고난'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있는가?
2. 과연 정의란 무엇이며 우리는 정의를 이룩할 수 있는가?
3. 두 사람의 대화는 언어학과 인지 이론에서 시작하여 과학의 역사를 거쳐서 창조성, 자유, 정의를 위한 투쟁으로 뻗어 나간다.
4. 인간에 대한 긍정,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의심, 이날의 대화에서 드러난 논지와 관점은 두 사람이 평생을 갈고닦은 사상의 기본이자 정수다.
5. 토론 후에 촘스키의 정치, 언어철학, 푸코의 진리와 권력의 관계, 국가 이성, 인권을 주제로 발표된 두 철학자의 대담과 강연, 성명서를 실어 토론 내용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6. 일반 대중을 상대로 발언한 것을 그대로 옮겨 적은 글이기 때문에 쉽고 간결하다.
촘스키는 언어학자, 푸코는 구조주의 철학자라는 것만 알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특히, 1장에서 나오는 두 사람의 대담은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사회자의 질문으로 시작되고, 사회자의 정리를 거치고 난 후 그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이 대담에 대한 영상도 있어서 찾아서 보았지만, 그 영상으로도 첫 질문 인간 본성에 대한 이들의 대화는 알기 어려웠다.
책 표지 뒤편에서 6번처럼 일반 대중을 상대로 발언하였고, 그것을 그대로 옮겨 적었기 때문에 쉽고 간결하다고 쓰여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들의 사상적 배경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쉽고 간결하다고 느낄 수 있겠으나, 배경 지식이 없는 나에게는 쉽고 간결하지 않다.
인간 본성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을 기대하였는지 모른다.
인간 본성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답을 내리지 않고 인간 본성의 구성요소 중 하나를 소개하는 설명으로 끝을 맺는다는 느낌이었다.
1. 발간시기
초판 1쇄 2010년 11월
초판 5쇄 2013년 8월
2판 1쇄 2015년 12월
2판 3쇄 2022년 5월
꾸준히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으로 보인다.
2. 이 책의 저자
노엄 촘스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진학한 뒤 언어학자 젤리그 헤리스를 만나면서 언어학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대학 졸업 후 하버드 대학교 특별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셀 푸코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에서 강의하다가 1970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콜레주 프랑스의 사상가 교수로 일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구조주의 철학자로 알려졌으나 그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자와 이민자,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핍박에는 늘 저항했다.
3. 이 책의 구성
서문을 시작으로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을 이해하기 위해 3장부터 읽어보라는 옮긴이 후기의 글에 따라 3장을 먼저 읽어보았다.
2번에 걸쳐 읽어본 결과 3장 -> 2장 -> 4장 -> 5장 -> 6장 -> 1장의 순으로 읽어 보았다.
이렇게 읽었는데도 1장을 읽을 때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에 그들의 답은 살짝 옆으로 비켜선 것 같은 답이라고 느꼈다.
인간 본성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구성도 내가 읽은 순서에 의해 정리를 하는 것이 나중에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3장 언어철학 - 노엄 촘스키
사회자의 정치적 불일치에 관한 촘스키와 푸코의 대담 내용에 관한 질문에
촘스키와 푸코의 정치적 불일치에 대한 촘스키의 요약
1. 푸코의 입장
정의와 '인간 본질의 실현' 같은 개념은 우리 문명이 만들어낸 것이고 우리의 계급제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정의라는 개념은 권력을 잡은 계급 또는 권력을 잡으려는 계급이 내놓은 구실에 불과하다.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려는 게 아니다.
즉, 계급투쟁에 참가하는 사람은 이기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지 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2. 촘스키의 입장
사회적 투쟁이라는 것은 어떤 뚜렷한 주장이 있어야 정당화될 수 있다.
잘 이해되지 않는 가치관과 사실에 바탕을 둔 간접주장일지라도 주장이 있어야 한다.
그 주장은 투쟁의 끝에 인간에게 이로운, 더 정의로운 사회가 앞당겨질 것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자기 방어적 폭력,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느라 불가피하다든가 하는 주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비폭력은 반대한다.
계급이 압제를 끝내고 그리하여 근본적인 인권을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주장이 뒷받침되어야 계급투쟁은 정당화될 수 있다.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주장은 결국 명분을 만든다는 것이고 근본적인 인권에 대한 정의와 계급투쟁은 하위 권력이 상위 권력에 대해 벌이는 작업이다.
계급의 압제은 하위 권력이 느끼는 상위 권력의 압제이며 근본적인 인권의 회복, 더 정의로운 사회는 하위 권력의 명분으로 폭력을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상위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한 압제 타파라는 이름으로 하위 권력이 상위 권력과의 위치 이동을 위한 폭력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정의로운 사회, 하위 권력이 말하는 근본 인권 보장의 주장이라도 있어야 제대로 성립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이 든다.
3. 나의 입장
촘스키의 주장과 예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푸코는 인권 회복, 정의로운 사회라는 명분을 배제한 계급투쟁이 어떠한 명분을 제시하더라도 그 정점은 권력 쟁취를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았다.
계급투쟁을 위해 제시한 정의는 본질적으로 구실에 불과하다.
즉, 명분을 만들어 내기 위한 구실에 불과함을 알게 해 준다.
촘스키는 학자적으로 접근을 한 것 같다.
본질은 푸코가 정확히 본 것이며, 촘스키는 학자적 입장에서 주장과 명분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촘스키의 의견은 본질에 들어가지 않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현상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 속에서 왕, 귀족, 평민, 상공인 등 수많은 계층이 뿜어낸 명분은 그 당시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올바른 정의였으며
자신들의 정의를 위해 권력을 획득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다.
결국 푸코는 현실에서 본질에 가까운 의견을 제시한 것이고 촘스키는 현실에서 이상을 추구하는 순수한 학자의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2장 정치 - 노엄 촘스키
1. 지식인 계급은 보통 사람이 다가갈 수 없는 난해한 활동에 종사하는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하지만 사회, 정치 문제 분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춘 데카르트적 상식(편견 없이 사실을 바라보고 간단한 전제조건을 시험해 보고 결론이 나올 때까지 논의를 추구하는 자발적 태도를 말한다.)만 있으면 된다.
이데올로기 분석은 조금 열린 마음, 평범한 지성, 건전한 의구심만 있으면 충분하다.
이데올로기적 통제의 목적은 그런 문제들이 대중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하고,
대중에게 스스로가 처한 상황의 갈피를 잡을 능력이 없거나
지식인 같은 중개자의 해석이 없으면 오늘날 세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세뇌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전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사회, 정치 문제를 분석하려는 사람은 객관적 사실을 직시하고 논의의 이성적 흐름을 기꺼이 따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2. 나의 생각
문제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통제의 목적에서 사람들이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촘스키의 전제 때문이다.
일반인이 데카르트 상식 즉, 편견 없이 사실을 바라보고 간단한 전제 조건을 시험해 보고, 결론이 나올 때까지 논의를 추구하는 자율적 태도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실현 가능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회, 정치 문제를 분석하고자 하는 사람은 생활을 영위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아니다.
지식인과 지식을 추구하는 계급, 이데올로기 추구 세혁과 그 주변인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전제된 것을 촘스키는 쉽게 말하고 있으나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교육의 바탕이 되어야 하며
교육의 바탕이 없더라도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지식 배경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것을 분석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이것을 위한 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관심이 없었고,
이러한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하기 때문에
이들은 이미 지식인 계급과 그 외 세력이 분석해서 몰고 가는 방향으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게 되며
이러한 방향성에 동참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편견, 편향된 시각과 그렇게 교육받은 시각이 하나이며
한편으로 동조하는 것이 그들에게 이득이 되거나 단지 마음의 평온을 위함이기도 하다.
또한 책에서 보여주듯 사회현실에 관해 지식인들이 왜곡한 프리즘을 제거하는데 심오한 학문이 필요 없고 평범한 수준의 판단력과 응용력만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것에 관해
이러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심이 개인에게 있어야 하지만
업으로 삼은 사람뿐 아니라. 일반인의 경우도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일반인의 열린 마음이 개인화 과정에서는 가능하나
집단을 이루었을 때에는 자신의 개인화 사고를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책의 내용에서도 이데올로기 분석은 특정 이데올로기의 요구 조건에 들어맞는 방식으로 사실을 제시하고 해석해야 하며
이데올로기와 관계된 실질적인 쟁점을 정직하게 논의하고자 하는 사람은 위험을 자초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득권에 위험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3. 특정 언론은 상반되는 기사나 해석을 나란히 제시하여 '균형'정책을 시도한다. 그러면서도 공식적인 견해 곧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따른 견해가 증거도 없이 득세하도록 방조하고, 비주류 견해는 신뢰할 만한 근거가 있는데도 무시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권력과 특권층의 필요에 더 잘 부응하는 견해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매체는 자본주의적 기관이다.
이런 기관이 지배적인 경제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민주적인 선전체계는 공식 이념을 반대한다고 해서 이론상으로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다.
선전체계는 그 이념을 강요하기보다 암시할 때 더 효과적이다.
앵무새처럼 뻔한 얘기를 달달 주입하는 것보다 허용되는 생각의 한계를 미리 설정했을 때 선전의 힘이 더 커진다.
거의 모든 언론이 이데올로기 체계의 기본 원칙에 복종하고 있다.
전체주의 국가는 간단한 공식 이념을 명백하고 확실하게 발표한다.
반대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1975년 워싱턴 포스트의 논설 내용 중
- 베트남 전쟁의 근본적인 '교훈'은 이런 것이다.
우리 국민 전체는 본질적으로 나쁘지 않지만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 촘스키는 수사법에 주목하라고 한다. "우리 국민 전체는"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이기로 결정한 사람이 '우리 국민 전체' 였는가?
사회자의 잠정적인 결론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는 촘스키가 언급한 대로 상당한 모순, 침해, 비판을 허용하지만 경제적인 동기를 비판하는 것은 용인하지 않는다.
4장 진리와 권력 - 미셸 푸코
1. 구조를 중시하여 사건을 배제하려고 했던 것처럼
반대로 사건을 중시하여 구조를 배제해서는 안된다.
서로 다른 유형의 사건들이 다양한 층위를 형성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존재를 품고 규정하는 역사는 권력관계이지 의미의 관계는 아니다.
역사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
역사가 불합리하다거나 뒤죽박죽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역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아주 세부적인 사항까지 분석이 가능하다.
단, 투쟁, 전략, 전술의 관점에서 분석할 때 그렇다.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의 배후에는 모든 오류와 환상에서 벗어난 거의 투명한 형태의 지식에 대한 동경이 있고
억압이라는 개념의 배후에는 모든 강요, 징벌, 정상화로부터 벗어난 형태의 권력에 대한 동경이 있다.
= 기만 없는 지식과 강압 없는 권력을 동경하는 것
2.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1) 좋든 싫든 그것은 진실이라고 간주되는 어떤 것에 대한 늘 대립적 입장을 취한다.
진실의 효과가 담론 내에서 역사적으로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2)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반드시 주체의 질서 속에 들어있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3) 이데올로기의 하부 구조,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결정 요소 같은 기능을 발휘하는 어떤 것과 대비해 볼 때 2차적 지위를 차지한다.
3. 권력의 성격을 언급할 때면, 떠올리는 금지를 강요하는 도식 체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따라서 이런 역사적 발견 문제가 발생한다.
"왜 서구는 권력행사를 순전히 사법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보면서 기술적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는가?"
1) 군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2) 군주제는 일종의 심판, 전쟁, 폭력, 약탈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권력으로 그런 갈등과 개인적 불화에 '안돼'라고 말할 수 있는 권력으로 등장했다.
3) 군주제는 스스로에게 사법적, 부정적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존재이유를 증명했는데 성립 즉시 월권을 하기 시작했다.
4. 권력관계에 대한 분석은 반드시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야 한다. 그 이유는?
1) 국가는 국가 기구들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권력관계의 모든 분야를 점유하지 않는다.
2) 국가는 이미 존재하는 다른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운영될 수 있다.
국가는 신체, 가족, 친족관계, 지식, 과학기술 등 전반적 권력 네트워크와 연관된 상부구조다.
5. 지식인의 위치
1) 과거에 보편적 의식이고 자유로운 주체였던 지식인은 국가나 자본에 복무하는 유능한 인재, 곧 기술자, 행정가, 교사 등과는 대비되는 개념이었다.
2) 각 개인의 구체적 활동이 정치화의 기반으로 복무하게 되면서부터 지식인의 성스러운 표시였던 글쓰기의 문턱은 사라졌다.
서로 다른 형태의 지식들이 수평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가능해졌고 정치화의 한 초점을 다른 초점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3) 국지적 지식인상은 2차 대전 이후 등장했다.
6. 진리는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보답이고, 오래 견딘 고독의 자식이고,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는 데 성공한 사람들의 특권은 사실이 아니다.
진리는 이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며 복합적인 형태의 제약에 따라 만들어진다.
각 사회는 진리의 체계가 있고 진리의 '일반 정치학'이 있다.
7. 우리와 같은 사회의 '정치 경제학'의 5가지 주요 특징
1) 진리는 과학적 담론 형태와 그 담론을 생산하는 기관에 집중되어 있다.
2) 진리는 각종 경제적, 정치적 요구에 복종한다.
3) 진리는 대량확산과 소비의 대상이며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4) 진리는 몇몇 거대 정치, 경제 기구들의 배타적 혹은 주도적 통제에 따라 생산되고 전파된다.
5) 진리는 정치적 토론과 사회적 대치의 산물이다.
8. 지식인을 정의할 때 중요한 것은 '그가 보편적 가치의 담지자인가 여부는 아니다. 오히려 어떤 구체적 지위를 지닌 인물인가 하는 것이다.'
9. 지식인의 3가지 구체성
1) 그의 계급적 지위
2) 그의 생활과 노동조건
3)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진리 정치학의 구체성
- 지식인의 지위는 일반적인 의미를 회득하게 되고, 그의 국지적 투쟁은 그의 소속 분야를 넘어서는 파급효과를 갖게 된다.
10. 지식인은 우리 사회의 유지에 필수적인 진리의 체제라는 일반적 수준에서 활동하고 또 투쟁할 수 있다.
여기서의 진리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고, 권력의 구체적 효과를 진리에 붙들어 매는 규칙들의 조합'이다.
즉, 지식인의 투쟁은 진리를 '위한' 투쟁이 아니고 진리라는 지위부여와 그것이 수행하는 경제적, 정치적 역할에 관한 투쟁이라는 것이다.
11. 지식인의 정치적 문제는 '진리'와 '권력' 차원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12. 가설, 제시, 검증 평가 제안
지식인에게 핵심적인 정치적 문제로 탐구해야 할 것은 새로운 진리 정치학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의 체계로부터 진리를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이미 권력이다.) 진리의 권력을 각종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영향력 형태로부터 떼어내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오류, 환상 소외된 의식, 이데올로기 등이 아니고 진리 그 자체다.
따라서 니체의 사상이 중요해진다.
* 니체의 사상
관점주의, 현실주의
모든 사회, 모든 개인에게는 항상 선의 위계가 존재하고 이것에 따라 개인은 자신의 행동을 규정하고 다른 사라들의 행동을 판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지속적으로 변한다.
5장 옴네스 에트 싱글라팀 - 정치적 이성 비판을 향하여 (전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 미셸 푸코
푸코의 첫 번째 강연 중
1. 계몽사상의 과제 중 하나는 이성의 정치적 권력을 증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합리성을 강조하는 사회가 개인과 개인의 자유 나아가 인류라는 종과 그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다.
1) 합리성과 정치권력의 남용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 - 관료제도, 강제 수용소 등
2) '이성'을 심판해 보라
- 이 분야에서는 무죄냐 유죄냐 여부는 상관없다.
- 비이성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성'을 제시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 이러한 심판은 우리로 하여금 합리주의자, 비합리주의자를 가르는 임의적이면서도 따분한 일을 하도록 할 것이다.
3) 합리화와 권력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 고리를 탐구하는 또 다른 방법 제안
- 사회나 문화의 전반적인 합리화를 다루지 말고 여러 분야 가령 광기, 질병, 죽음, 범죄 등 근본적 체험에 국한해 합리화 과정을 분석한다.
- 합리화는 위험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어떤 것을 합리화하려고 들 때의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합리성의 원칙에 순응하는가 여부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종류의 합리성을 찾아내는가이다.
- 계몽사상이 우리 서구역사에서, 또 정치적 기술 발전에서 중요한 단계였기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여 우리의 역사 속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면 그보다 더 옛적의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2. 중앙집중형 국가는 개인을 지속적이고도 항구적으로 통제할 목적으로 권력 기술을 개발해 왔다.
이것은 중앙집중권력의 정치 형태이며 목자 신분의 개인화한 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1) 신, 왕, 지도자란 곧 양 떼를 이끄는 목자라는 생각은 이집트, 아시리아, 유대 등 고대 동양 사회에서 나타난다.
- 파라오는 이집트의 목자였다. 목자의 지팡이를 대관식 날 받는다.
- 사람들의 목자는 바빌로니아 군주의 정식 호칭 중 하나였다.
- 신 역시 인간들을 풀밭으로 데려가 먹여주는 목자였다.
- 목자의 심상을 발전시켜 더욱 굳건하게 한 것은 히브리 사람이다.
- 사악한 왕은 일관되게 나쁜 목자에 비유되었다.
3. 목자의 특징 및 역할
1) 목자는 땅보다 양 떼에게 권력을 휘두른다.
그리스 신들은 땅을 소유했고 이런 일차적 소유가 인간과 신들의 관계를 규정한다. 반면 히브리 문헌에서 목자 - 신과 양 떼의 관계가 더 근본적이고 중요하다. 땅은 신이 양 떼에게 마련해 주고 약속해 주는 것이다.
나의 생각
이것은 유목민의 특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가축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양은 스스로의 경험으로 시기와 지역에 맞게 풀을 찾아 나선다. 다만 위험 요소 또한 스스로 책임지어야 한다.
이런 양들이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서 기본적인 생물학적 특징 일정 부분을 인간에게 의존하고
인간은 시기와 지역에 맞게 양 떼에게 풀을 뜯게 하였다.
먹이 제공에 대한 공통점 외에 위험 요소를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수행하여 양 떼의 안전한 사육을 도왔으며
양의 입장에서는 위험 지수를 낮추는 대신 인간에게 털과 젖, 고기를 제공하게 된다.
이것은 양을 위한 것인가 인간을 위한 것인가 생각해 보면
양의 입장에서는 자유의 상실이며 인간의 입장에서는 반영구적 이익이다.
2) 목자는 양 떼를 모아들이고, 인도하고, 지시한다.
그리스 사상에서는 정치 지도자가 도시 내의 적대관계를 진정시키고 갈등을 조정하여 봉합한다.
그러나 목자가 거두어들이는 것은 흩어진 개인들일뿐이다.
목자의 직접적인 현존과 행위가 양 떼를 존재하게 만든다.
그리스 법률가는 법률 제도가 잘 갖추어진 도시를 뒤에 남긴다. 그가 사라져도 도시는 존속한다.
3) 목자의 역할은 양 떼의 구원이다.
목자에게는 자신의 양 떼를 위한 목표가 있다. 좋은 풀밭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스 지도자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결정을 내렸다. 목자가 하는 일은 양 떼의 복지에 관련된 것이다.
양 떼가 잠들면 목자는 감시한다.
4. 목자의 헌신에 관한 두 가지 측면
1) 그는 자신이 먹이는 양 떼를 위해 행동하고, 일하고, 헌신한다.
2) 양 떼 전체와 양 한 마리 한 마리 모두에게 신경을 쓴다.
왕이 목자냐 아니냐는 어떤 종의 인간들이 양 떼가 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목자가 하는 일을 분석함으로써 결정된다.
5. 목자의 일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1) 목자는 양 떼의 선두에 선 사람
2) 그의 일은 양 떼에게 양식을 제공하고, 아플 때 간호해 주고, 무리를 한데 모으기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길을 인도하고, 훌륭한 자손을 보도록 하는 것이다.
6. 왕의 일은 어떤 것이 있는가?
1) 왕은 목자와 마찬가지로 그 도시(국가)의 선두에 선다.
2) 나머지 일은 다른 사람이 한다. 그래서 많은 시민이 '인간의 목자'라는 칭호를 들을 자격이 있다.
푸코의 두 번째 강연 중
1. 중세에 목자직은 효과적이고 실용적인 인간 관리제도로 확립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끊임없는 투쟁의 대상이 되었다.
2. 국가가 생산한 정치적 합리성의 구체적 유형
국가이성
1) 국가 이성
ㄱ) 국가 통치 원칙과 방법이 하느님이 세상을, 아버지가 가정을, 상충부가 지역 사회를 다스리는 방법과 어떻게 다른지 규정한 교리다.
ㄴ) 국가 이성은 '기술'로 간주된다. 어떤 규칙에 순응하는 기법이다. 그 규칙은 합리적 지식에 속한다.
ㄷ) 구체적 통치 기술은 합리적이며 통치 대상은 국가다.
ㄹ) 16세기와 17세기에 사람들이 '국가이성'의 이름을 추구했던 것은 실제적인 통치를 이끌 수 있는 원칙들이었다.
정치 이성은 무신론과 같은 것으로 치부되었다.
자연이나 일반적인 자연법칙과 상관이 없다.
국가란 무엇인가, 그 요건이 무엇인가 등과 관련이 있다.
2) 국가 이성이 제기하는 문제는 국가 그 자체의 존속과 성격이다.
ㄱ) 통치 기술의 목적은 국가 자체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ㄴ) 국가는 무한정 오랜 역사적 시간 동안 버티어야 하고 그것도 분쟁이 발생한 지리적 지역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3) 국가의 힘을 강화하는 합리적 통치로서 이해되는 국가이성은 어떤 특정한 유형의 지식을 구성할 것을 전제로 한다.
ㄱ) 통치는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ㄴ) 정치적 '통계' 혹은 '산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ㄷ) 다른 국가들의 힘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이러한 지식은 올바른 통치에 필수적이다.
4) 요약
1) 국가이성은 신적, 자연적, 인간적 법칙에 의거한 통치술이 아니다.
2) 세상의 일반적인 질서를 중시할 필요가 없다.
3) 국가의 힘과 관련된 통치술이다.
4) 국가의 힘을 증강하려는 목표를 둔 통치술이다.
단속이론
1) 단속이론
ㄱ) 국가의 합리적 행위가 미치는 대상의 성격을 규정한 교리다.
ㄴ) 국가 행위가 추구하는 목적,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도구의 일반적 형태 등도 규정한다.
2) 경찰이론 - 루이 튀르케 드 메이에른의 유토피아 프로그램
ㄱ) 경찰은 사법부, 군대, 재무부와 함께 국가를 인도하는 행정기능이다.
ㄴ) 경찰은 모든 것을 아우른다.
ㄷ) 경찰은 도시에 장식, 형태, 국가의 활력을 보장하고 강조하는 모든 것에 관여한다.
ㄹ)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고 거래하는 관계를 조성하고 나아가 상호부조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ㅁ) 경찰은 사람들 사이에 '소통'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3) 프랑스 들라마르 '경찰론'
ㄱ) 생활이 경찰의 감시대상이다.
ㄴ) 경찰의 유일한 목적은 사람들이 이승에서 최대의 행복을 향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4) 독일 요한 하인리히 고틀로프 폰 유스티의 '경찰 입문'
ㄱ) 경찰의 구체적 목적은 사회에서 생활하는 개인들을 단속하는 것이다.
ㄴ) 경찰은 국가의 힘을 강화하고 그 힘을 최대한 활용하게 해 주며 시민들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
ㄷ) 경찰 업무는 긍정적인 일이다.
시민의 생활 그리고 국가의 힘을 개선하기 때문이다.
ㄹ) 인구를 더 강조했다.
독일에서 경찰의 단속 대상은 인구가 되었다.
ㅁ) 경찰학을 정립했다고 주장
국가 곧 영토, 자원, 인구, 도시 등을 감시하는 틀이다.
ㅂ) 경찰학은 통치 기술이면서 일정한 영토 안에 거주하는 인구에 대한 분석 방법이다.
3. 통치기술 연구의 기본 전제
1) 권력은 실체가 아니다.
ㄱ) 권력은 개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특정한 유형의 관계일 뿐이다.
ㄴ) 권력의 주된 특징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위를 거의 전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2)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많은 요소가 권력을 결정한다.
ㄱ) 언제나 합리화가 권력 결정에 작용한다.
ㄴ) 인간이 인간을 통치하는 데에 특정한 유형의 합리성이 개입한다.
3) 어떤 형태의 권력에 저항하거나 반항하는 사람들은 권력이 어떤 합리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4) 지난 여러 세기 동안 국가는 가장 획기적이고 가장 가공할 인간 통치술의 형태였다.
6장 정부에 맞서 - 인권 - 미셸 푸코
이 성명은 1984년 6월 <리베라시옹>에 개제 되었다.
푸코는 제네바에서 해적 행위에 반대하는 국제 위원회가 창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글을 썼다.
1. 권리와 의무를 동반하는 국제 시민권이 존재한다.
ㄱ) 우리는 그 행위자가 누구든 그 피해자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모든 권력의 남용에 항의할 권리를 지닌다.
ㄴ) 우리는 피통치자 공동체의 구성원이고 그 때문에 상호 연대를 보일 의무가 있다.
2. 국제 시민은 사람들의 고통을 정부의 눈과 귀에 증언해야 한다.
ㄱ) 정부가 사람들의 고통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ㄴ) 사람들의 고통은 묵묵히 참아야 할 정책의 결과물이 절대 아니다.
ㄷ) 사람들이 권력에 대항하여 발언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토대로 한다.
3. 우리는 우리에게 종종 제안되는 노동의 분업을 거부해야 한다.
ㄱ) 개인은 분노하며 발언할 수 있다.
ㄴ) 정부는 이에 응해 행동해야 한다.
ㄷ) 좋은 정부는 그러한 분노가 폭력적이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는 한 피통치자의 신성한 분노를 존중한다.
ㄹ) 때때로 통치자가 일방적으로 말하고 자신의 말만 고집하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ㅁ)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단순 무식한 연극적 역할을 거부해야 한다.
ㅂ) 정부가 권력을 독점하려는 자리에 개인들의 의지가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그 권력의 독점으로부터 우리의 권리를 탈환해야 한다.
1장 인간의 본성 - 정의와 권력 - 노엄촘스키와 미셸 푸코
1971년 네덜란드 TV 대담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영상을 검색하여 이들의 대담 내용을 들어보았다.
"촘스키 푸코" 이렇게만 검색해도 나온다. 시간은 약 1시간 정도이며 자막이 있다.
네덜란드 사상가 폰스 엘더러스가 사회자를 맡았다.
사회자는 철학과 정치에 관한 흥미로운 토론으로 소개하면서 인간 본성의 문제로 첫 질문을 시작한다.
촘스키는 인간 본성의 구성요소로 언어를 제시하며, 내재된 원리인 언어 학습 기능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도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에 대해 푸코는 지식의 역사에서 인간성이라는 개념은 어떤 특정 유형의 담론이 외부 환경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주제로 17,8 세기의 관점, 지식에 관한 것, 창조성에 관한 것, 정치, 권력, 교육제도 등을 서로 풀어나가면서 인간 본성을 이루는 구성 요소의 한 부분을 보여 준다.
요 부분은 나중에 시간을 내서 다시 읽어보아야 하겠다.
두 인물, 촘스키와 푸코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이 너무 없는 상태에서 1장에 대한 두 사람의 토론은 이해할 수 없다.
옮긴이의 후기 - 옮긴이가 정리한 내용이다.
이 책의 주제는 인간성과 인간의 사회이다.
1. 인간성에 대하여
1) 촘스키
ㄱ) 제한된 데이터로부터 고도로 복잡하고 조직적인 지식을 끌어내게 하는 타고난 구조야말로 인간성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다.
ㄴ) 이러한 구조는 생래적이라고 보며, 이런 타고난 인간성이 사회적, 지적, 개인적 행동을 인도한다.
ㄷ) 관념론의 입장에 서있다.
2) 푸코
ㄱ) 인간성을 과학적 개념으로 보기 어렵다.
ㄴ) 지식의 역사로 볼 때 인간성이라는 개념은 주로 인식론의 지표에 지나지 않았고 시대별 사상 틀의 소산이다.
ㄷ) 인간성은 시대별로 다르게 이해되었기 때문에 어떤 본질적 실체는 없다.
ㄹ) 경험론의 입장이다.
결론 )
사회의 진보는 인간성과 환경의 상호작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촘스키는 인간의 정신을 푸코는 사회, 정치적 조건을 더 강조했다.
2. 정치에 대하여
1) 촘스키
인간성에 바탕을 둔 더 나은 정의로운 사회를 내다봤다.
2) 푸코
ㄱ) 서구 사회의 현재 제도는 부르주아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ㄴ) 정의와 인간 본질의 실현 같은 개념은 부르주아 문명이 만들어낸 것이다.
ㄷ) 시대가 바뀌면 얼마든지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
결론)
촘스키는 인간성은 무엇이다 하고 말하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푸코는 인간성은 무엇이 아니다 하는 부정적 측면에 더 집중한다.
3. 옮긴이의 느낌
1) 사상들의 본격적 저술은 읽기가 쉽지 않다.
2) 촘스키와 푸코의 토론, 그 뒤의 대담은 모두 일반 대중을 상대로 발언한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고, 또 어렵지 않게 두 학자의 사상적 배경을 파악할 수 있다.
3) 이 책의 3장 끝부분에 촘스키 자신이 푸코와 토론한 내용을 요약 설명해 주는 부분이 8쪽가량 들어있다.
두 철학자의 사상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이 부분을 먼저 읽고 토론 부분인 1장을 읽으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이라 생각한다.
4. 느낌
이 책은 쉬운 책이 아니다.
처음은 1장부터 순서대로 읽어 나갔다.
두 번째는 옮긴이의 권유대로 3장을 읽고 요약 부분을 중점적으로 더 읽은 다음 2,4,5,6장으로 넘어갔으며
마지막에 1장을 읽었다.
차라리 2,3,4,5,6장은 무슨 말을 하는지 대강 알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접어들게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읽고도 1장을 보면 이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그 흐름이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그래서 인간 본성이 뭔데?"라는 끊임없는 답을 구해서 그런가 보다.
한 가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면 될 듯하다.
한쪽 면을 강조한 상태에서 그 위치를 지키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의 생각에 수긍을 하더라도
토론이 되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음을 볼 수 있다.
두 사람에 대한 배경지식을 축적하게 된다면
두 사람의 토론에 대한 영상을 다시 한번 볼 것이다.
이 책은 옮긴이의 후기에서 옮긴이가 잘 정리해 주었다.
이 책이 이런 책이다라고 알고 싶은 사람은 옮긴이의 후기를 먼저 보고
이 책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산적 책읽기 50 - 미래를 위한 자기발전 독서법 (1) | 2024.03.16 |
---|---|
초역 비트겐슈타인의 말 -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들 (0) | 2024.03.03 |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강의 - 담론 (1) | 2024.02.10 |
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수업 (1) | 2024.02.10 |
맨땅에 제조 - 디자이너라면 욕심나는 내 제품 만들기 (4) | 2024.02.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