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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스 페이퍼 - 예수문서 : 다빈치코드 저자가 내용을 훔친 책

by 나노그램 2023.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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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성경에 감춰진 비밀을 밝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동안 믿어온 것은 무엇인가?

 

 

예수 이후 기독교가 가장 불편하게 여겼던 진실.

과연 성경과 예수는 맹신의 도구일 뿐인가?

 

왜 기독교는 영성을 잃어왔는가?

기독교는 과연 더 이상 영성의 담지자가 될 수 없는가?

 

우연히 여러 채널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성혈과 성배'의 마이클 베이전트.

호기심을 유발하는 책을 발견하고 '성혈과 성배'를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을 하였다.

2002년에 절판이 되어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영문판은 아마존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책 판매가가 2만 4~5천 원인 걸로 알았는데, 중고책 시장에서는 15만 원대를 훌쩍 넘는 책이다.

 

다시 작가로 검색을 하니, '성혈과 성배' 이후 더 많은 자료를 모아 출간한 책이 있었다.

'지저스 페이퍼'

이 책의 내용을 훔쳐서 나온 책이 다빈치 코드이다.

이 책 보다 다빈치 코드가 더 많이 팔렸다.

 

유대교에서 파생된 기독교가 생성되고, 초기의 가르침이 후대에 성경이 쓰이면서 왜곡되고, 

점점 세속화되는 것을 한탄한 책이다.

신화로서의 예수가 아닌 역사 속에서 예수를 조명한 책이다.

 

1. 발간 시기

 

초판 발행 2007년 1월 30일

초판 2쇄 발행 2007년 3월 8일이다.

 

좀 오래된 책이다.

아직도 아마존, 교보문고에서는 영문판으로 판매가 되는 책이다.

 

2.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베이전트

 

뉴질랜드 출생이며, 영국 캔터베리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였다.

영국 켄트 대학에서 신비주의와 종교경험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성혈과 성배'의 저자이며, '메시아의 전설', 바빌론의 저주', '사해문서의 조작' 등의 저서가 있다.

 

3. 이 책의 구성

 

총 14장으로 이루어진 책은 예수의 행적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제1장 사라진 보물

 

발견된 문서와 그것을 판매하려는 사람, 문서를 빼돌린 영국박물관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나온다.

발견된 문서의 검증을 요청한 영국박물관 직원의 묘연한 행방.

사라진 문서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들어있다.

'우리의 과거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줄지도 모를 결정적인 열쇠는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제2장 사제의 보물

 

피레네 산맥 레느샤토의 작은 언덕배기 마을 교회의 책임신부 베랑제 소니에르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은 마을 교회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미스터리한 자료를 발견한 후, 

연간 소득 10달러인 그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그가 발견한 자료가 무엇인지에 대한 작가의 추측과 여정이 들어있다.

 

로마의 법률 서류에 보이는 사건 나열식 중

사건 : 알렉산드리아, 클라우디우스 4년 (기원후 45년)

갈릴리 지방 출신인 요셉의 아들 예수에 관한 기록, 예수살렘에서 본디어 빌라도에 의해 공식적으로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무죄가 선고됨.

현재 로마제국 전역에서 발생한 소요의 주모자로 확인됨.

 

모더니스트들은 과학과 고고학 그리고 학문적인 비평에 힘입어 교회에서 주장하고 있는 교리에 메스를 가하려고 했다.

많은 신학자들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의 역사적인 진실성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19세기 동안 생성되고 나타난

민주주의 정치철학과 사회적 의식의 진보, 점점 발전하는 성서에 대한 비판과 성서의 내용들 간의 불일치로 인해 

종교의 진리성을 회의를 느끼는 현상에 대한 우려로 교황청 당국자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으로 작용하였다.

 

합스부르크가 의 패배로 인해 교황청령의 영토 대부분이 새로 건국된 이탈리아 왕국에 넘어가고,

이러한 사건으로 인한 권력의 기반이 약화된 교황청에서 한 일은

교황 피우스의 '교황무오설'이었다.

이것은 성서비평과 고고학의 발견으로부터 바티칸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을 막아볼 심산이었다.

 

모더니스트들의 목적은 교리를 학문적인 시작에서 수정하려고 했다.

이들의 연구가 가져다준 역사적인 증거는 교회가 만들어낸 영속시킨 신화들, 특히 예수에 대한 신화들의 진실을 밝혀내는 일조를 했다.

바티칸이 생각한 폐해 중 하나는

르아시 신부의 말 : 예수는 왕국이 도래할 것이라고 선포했지만 정작 온 것은 교회였다.

 

모더니즘을 선도한 조지 티렐은 바티칸의 독재를 신랄하게 비판

: 교회는 진리의 공식 기관이 아니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의 작품 속 한 문장

: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기원후 45-54)에 관한 기록 속에 '로마의 유대인들은 크레스투스의 선동에 지속적으로 소요를 일으켰기 때문에 황제는 그들을 도시로부터 추방시켰다.

 

크레스투스라는 말과 혼용해서 쓰인 Christos는 그리스의 번역으로 messiah를 가리키며,

messiah는 기름 부음을 뜻하는 히브리어

ha-mashiah로부터 파생된 아람어 meshiha를 그리스어로 음사한 말이다.

 

제3장 예수왕

 

로마의 십자가형은 역사적으로 정치적인 범죄행위에 대한 형벌이었다.

하지만 빌라도는 종교적인 이유로 예수를 처형시킬 것을 요구한 유대인들에게 넘겨주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나온다.

종교적인 죄를 범한 자는 돌로 쳐 죽이는 것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유대의 형벌이다.

 

예수는 정치범으로 간주되어 십자형을 받았던 것이며, 복음서들은 사건의 진실을 은폐시키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의 재판을 맡았던 사람들은 유대 지도자들이 아니라 로마인이었으며, 예수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과격한 정치적 활동을 벌였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역사성을 논하려면 먼저 예수가 선동죄로 로마인들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복음서 기록에 예수 옆의 도둑으로 묘사된 두 명의 죄수는 그리스 텍스트에서는 자객을 뜻하는 lestai로 지칭되고 있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 있어서 통상 '열심당원'을 가리키는 말이며,

열심당원들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유대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 독립투사들이었다.(마태복음 27장 38절)

로마인들은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했다.

 

예수의 제자 중 열심당원은 시몬(누가복음 6장 15절)이며 그는 시카라는 단검을 소지하고 있었기에 시카리로 불렸다.

가롯 유다 또한 시카리였다.

누가복음 22장 36절~38절에 예수는 '검을 가지지 않은 자는 외투를 팔아서라도 그것을 가지도록 하라'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무장할 것을 지시한다.

여기서 예수는 로마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는 강렬한 유대적 열망을 가진 폭력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빌라도는 예수의 일과 무관하다는 것을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지만

유대인들의 왕이라는 표식이 십자가 위에 놓여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는 점은

그가 로마법에 따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관여했음을 말해준다.

 

사해문서는 열심당이 소장했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문서들이다.

사해문서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들에 의해 직접 쓰였으며, 후기의 편집자와 개정자의 손에 의해 각색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왔다.

 

사해문서는 예수의 활동, 그의 출생과 결혼의 배후에 있는 정치적인 메커니즘,

그의 적극적인 열심당 활동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아버지는 다윗의 자손이고 그의 어머니는 대제사장 아론의 자손으로 묘사되어 있다.

(마태복음 1장 1절, 누가복음 1장 5절, 36절, 2장 4절)

예수는 이들 두 혈통을 이어받은 자란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가 왜 열심당에서 중요한 인물로 여겨졌는지 알 수 있다.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 스가랴는 예루살렘에서 나귀를 탄 왕이 나오리라 예언을 했다.

예수는 대중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 이러한 행위와 구약에 나오는 다른 예언들을 수행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마태복음 21장 5절에 인용되어 있는 스가랴의 예언처럼 예수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예수는 계획적으로 그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예수의 이러한 고의적인 행위에 관하여 궁금한 사람은 휴 손필드의 '유월절의 음모'라는 책을 읽어보면 된다.

 

제4장 별의 아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 :

이 시대에 유대에서 세계의 지도자가 나오리라는 고대의 미신이 동방에 퍼져있다.

이 예언은 로마의 황제에 대한 언급이었지만 유대인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메시아에 대한 언급으로 받아들였다.

 

타키투스의 언급 : 

대다수 사람들은 그들의 제사장들이 가지고 있는 고대의 성경 속에서 예언하고 있는,

이 시대를 동양이 승리하고 유대로부터 세계를 지배하게 될 인물들이 나오리라 한 바로 그 때라고 믿었다.

이러한 수수께끼 같은 예언은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를 두고 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은 이러한 예언이 그들을 위해 예비된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불어 닥친 대재앙조차도 그들로 하여금 진실에 눈뜨게 할 수는 없었다.

 

열심당 전사들은 만약 자신들이 순결한 의식을 행하다 장렬하게 전사한다면

"나는 너희들을 무덤으로부터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그리고 너희들은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보내리라(에스겔 37장 12절~14절)"라는 에스겔의 예언에 따라 다시 부활하게 되리라 믿었다.

더구나 그들과 함께 죽는 사람은 함께 부활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이유로 열심당 전사들은 사진의 가족과 함께 죽는 길을 택했다.

그렇지 않다면 같이 부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은 그 당시의 역사를 사실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다.

다분히 냉소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신약성경에 묘사된 예수의 처형에 대한 이야기는 고의적으로 그 사건의 정치적 맥락을 삭제해 버렸다.

후기 성경편찬자들은 예수에게서 유대적인 요소들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그 결과 오늘날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유대인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예수의 역사성과 신성에 대한 그의 설교

요한복음 10장 31절~35절 : 

유댄들이 그를 돌로 치려 하자 예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여러 가지 선한 일을 행했거늘... 대체 어떤 연유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유대인들은 그에게 대답했다.

"우리는 네가 선한 일을 행한 일로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하나님을 모독했기 때문이다.

사람인 네가 어찌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칭한단 말인가! 

예수는 대답했다.

"율법에 기록하기를 내가 너희를 신이라고 하지 않더냐? 그래서 율법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자를 신이라고 불렀다."

 

제5장 믿음의 예수

 

예수는 유대인이다.

검은 피부를 가진 팔레스타인이었다.

예수가 존재하고 있을 당시에는 신약성경은 물론 기독교도 없었다.

신약성경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유대경전으로부터 인용된 말로 많이 발견된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유대경전을 그들의 성경으로 삼았다.

신약의 정경화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기독교의 정통 교리도 확립되어 있지 않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약성경을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신약의 경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의 문자적인 의미를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다.

사실 기독교가 태동한 후 초기 150년 동안 구약성경이라고 불리는 책이 유일하게 권위를 지닌 책이었다.

 

항상 있어 왔지만 특히 지난 150여 년에 걸쳐 논의되어 온 가장 극단적인 주장은

예수는 실존인물이 아니며 그에 대한 이야기는 초기에는 바울의 입장을,

나중에는 유대의 메시아가 천사의 모습을 한 반역의 왕으로 묘사하는 로마의 전통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메시아들의 이야기를 짜깁기한 것이라는 설이다.

 

아도니스 신화, 오시리스 신화, 미트라 신화 이들 셋은 모두 동정녀로부터 태어났으며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났다.

예수라는 이름이 여호수아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구원자를 의미하는 아람어 예수아로부터 왔다는 사실,

그리스도가 기름 부은 자를 의미하는 아람어 메시하의 그리스 번역어인 크리스토스로부터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신약에 포함된 바울의 서신은 복음서들과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바울은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따름이다.

바울은 예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으며, 그의 가르침은 이교도 개종자들인 이방인들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야고보를 비롯한 예수의 제자들은 유대법을 유지하는데 큰 관심을 보였다.

바울은 율법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그것을 지키지 않더라도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야고보의 단호한 입장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은 율법을 지켜야 하며 그중에 한 가지라고 위반하는 자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야고보서 2장 29절)

바울의 입장 "사람은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된다."라며 믿음의 할례를 강조한다.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기를 원하는 기독교 내의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를 영지주의자로 불렀다.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영지주의 복음서들 중의 하나인 도마복음서에는

"너희들이 자기 자신을 알게 될 때 살아 있는 아버지의 아들이 누군지를 알게 되고 깨닫게 될 것이다."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신학적 판단은 지배와 힘의 논리에 따라 결정된다.

초기 기독교에 있어서 정통과 이단이라는 용어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정경에 포함된 경전들이란 사도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고 역사적으로 중요성을 지닌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낱 교리적인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은 그들이 언급하고 있는 사건들보다 훨씬 뒤인 기원후 393-397년 히포와 카르타고 공의회에 와서야 비로소 공인을 받았다.

 

이레네우스는 기독교의 혼란기에 정통수호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그는 교회의 중앙집권화는 교회가 보편적인 주장을 하고 보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의 중앙집권화와 정통성은 교회가 정통성을 갖고 있으며 올바르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교회 내에서의 힘의 우위는 하나님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을 의미하며, 분열은 그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한 분이 하나님이 존재하듯이 단 하나의 교회와 진리만이 있을 수 있다는 논리다.

 

아리우스 파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 사람들은 그러한 주장이 경전이나 기독교 전통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의 목소리는 이미 결론을 갖고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한 정치꾼 신학자들의 귀에 들릴 리가 없었다.

결국 표결에 진 아리우스와 그의 주장에 동조한 사람은 다뉴브 지역으로 귀양을 갔다.

병상에 누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아리우스 파 교회의 교인들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황제는 죽기 직전 세례를 받았으며 종교를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내려진 결정으로 인해 믿음의 예수가 탄생되었으며 믿음의 예수는 역사적인 예수로 둔갑되었다.

이런 결정은 신약성경에 포함시킬 경전을 선택하는 기준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믿음이 지배하는 기독교 시대를 열었으며, 이 외의 다른 것들은 이단으로 취급되어 거부당하거나 소멸되고 말았다.

 

기원후 396년 아빌라의 감독이었던 프리실리아누스는 교회가 이단에 대해 행한 최초의 처형으로 기록된 사람이다.

 

제6장 바티칸의 두려움

 

프랑스 남부 지방에 널리 퍼져있던 기독교 신비주의 종파인 카타르 파는 날로 교세가 확장되었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로마 당국은 이 종파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카타르파 신도들에게 있어서 로마 교황은 적그리스도였으며, 로마의 교회는 "요한 계시록에 묘사된 창녀" 나 "늑대들이 우글대는 교회"에 지나지 않았다.

 

카타르 파는 출가와 영성수련, 간소한 삶을 지향하고, 이들의 가르침은 개인적인 영성 체험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물질적인 헌납을 일체 거부한 카타르파의 청빈한 삶은 로마 성직자들의 타락한 삶과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인 스페인 수도사 도미니크는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을 소유했다.

카타르파를 척결하는 십자군 운동에 가담했으며, 교황의 지원하에 도미니크 수도회를 창설했다.

그들의 목적은 이단을 색출하고 처단하는 데 있었으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도미니크는 1221년에 죽었으며, 툴루즈의 여인이 산 채로 화형을 당했던 1234년 바로 그전 해에 교황으로 선출된 그의 친구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바티칸의 종교재판소는 그리스도의 이름하에 사람들을 죽이는, 교회의 허가를 받은 살인자들이었다.

이들은 이단자들을 화형 시킴으로써 신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각종 규율과 규정을 제정하여 신자들을 통제했다.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종교재판소의 마녀사냥에서 150년 동안 약 3만 명의 여자들이 화형을 받고 죽었다.

 

처녀 잉태의 개념은 히브리바이블, 기독교의 구약성경이 기원전 3세기 그리스어로 번역되었을 때 생겨났다.

이사야 7장 14절에는 '젊은 여자'가 사내아이를 낳으리라는 것과 그가 임마누엘이라고 불릴 것이라는 예언이 나온다.

'젊은 여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alma가 그리스어 바이블에는 '처녀'를 뜻하는 parthenos로 번역되었다.

 

바울의 고린도 전서 7장 25절 :

독신에 관해 어떠한 하나님의 계명도 알지 못한다.

 

고린도 전서 9장 5절 :

교황의 시조로 받들고 있는 사도 베드로는 결혼했으며 그의 아내와 함께 전도여행을 다녔다.

바울 자신과 모든 혹은 대부분의 다른 제자들 및 예수의 형제들도 기혼자들이란 사실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후에 교회에 의해 바울이 점차 독신을 지켰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남성 독신자들은 교회 내에서 권력을 거머쥐었지만 여성 독신자들은 그러지 못했다.

 

제7장 조작된 예수의 십자가형

 

예수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한 행동은 치밀한 계획하에 사전에 이루어졌음을 말해주는 힌트가

요한복음 11장 56-57절에 나온다.

 

기름 붓는 의식이 함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메소포타미아 종교 특징은 아니다.

유대교를 제외하고 성유로서 기름 붓는 의식을 중요시했던 나라는 유일하게 고대 이집트밖에 없었다.

성직자들은 그들의 머리에 성유를 붓는 의식을 통해 성직자로 임명되었다.

 

신약성경은 '유대인들'을 예수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론은 바티칸에 의해 결국 허위로 판명되었다.

1960년대에 가톨릭 교리에서 삭제될 때까지 천년 동안 지속되었다.

 

예수의 체포를 요구한 사람들은 일반적인 유대인이 아닌

로마를 증오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 때 그들의 일원이었던 사람을 희생의 제물로 사용한 열심당 무장세력이었다.

 

복음서에 묘사된 정황(요한복음 19장 31절-35절)과 예수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연관 지어 볼 때 마약 속에 담근 해융이 예수의 죽음의 원인이었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창이 예수의 옆구리를 관통하자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는 대목에서

첫째 창이 뇌나 심장을 관통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즉사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몸에서 피가 나온 것으로 판단컨대 그는 그때까지 살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 (19장 41절-42절)은 예수를 십자가로부터 사유지에 있는 빈 무덤으로 옮겼다고 적고 있다.

그 무덤은 당시 명망가이자 재력가인 아리마대의 요셉이 소유한 것이다.

요한복음 19장 39절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아리마대의 요셉과 그의 동료 니고데모는 그날 밤 다량의 몰약과 알로에를 가지고 그 무덤을 방문한다.

몰약과 알로에는 당시에 의약품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몰약은 지혈작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아리마대의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신을 넘겨달라는 이야기 :

그리스어로 된 원텍스를 보면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신을 요구했을 때 '시신'에 해당하는 단어는 소마(soma)였다.

그리스어로 이 말은 살아있는 몸을 뜻한다.

그러나 빌라도가 요셉에게 여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낼 가져가라고 허락했을 때 그가 그 '시신'에 대해 사용한 단어는 프토마(ptoma)였다.

- 마가복음 15장 43절 -45절) 이것은 죽은 몸, 시체나 송장을 뜻한다.

 

마가복음의 그리스어 원본에 따르면 요셉이 예수의 살아있는 몸을 요구한 반면, 빌라도는 그에게 예수의 시체라고 믿는 것을 가져가도록 허락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말 (누가복음 11장 34절) :

"네 눈이 순일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다."

- 이 말은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신비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 사해문서의 열심당의 교리에도 발견되지 않는다.

- 비유대적인 요소이다.

- 신비가들에 의해 알려져 온 영적체험을 했던 것이다.

- 예수의 이러한 체험 장소는 유대의 정치적 상황에는 무관심하고 그런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켰던

그 당시 유대인들이 거주했던 유일한 지역인 이집트이다.

 

제8장 이집트로 간 예수

 

구약의 예언은 예수의 행동을 제약했다.

예수는 예언들이 정해준 틀 안에서 메시아적 임무를 수행했다.

호세아 예언(11장 1절) :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으로 불러냈다.

 

테라페우테파라는 공동체의 이름은  몸과 마음의 치유라는 의미와 함께 숭배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테라페우테 신앙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 즉, 결코 창조된 존재는 아니지만 영원성과 신성을 지닌 유일한 실제에 대한 믿음을 중시한다.

테라페우페파는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이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으며, 자신들의 삶을 영적 생활에 바치는 전문 수행자가 될 수 있었다.

 

제9장 이집트의 비의

 

이집트인들에게 서쪽은 죽은 자들의 땅을 의미했다.

무덤과 피라미드들은 언제나 나일 강 서편 제방에 건립되었으며, 밤이 되면 태양은 그곳으로부터 저쪽 세상으로 사라진다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저 세상과 지상의 세계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상이다.

 

제10장 입문식

 

고대 세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신탁은 왕이나 지도층 인사들이 정치적인 조언을 얻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이러한 방식 중 영적 부화 의식이 있다.

이러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입문자는 지하방이나 동굴에서 완전한 고요와 침묵 속에 누워 꿈속에서 예시를 받거나

깨어있는 것도 아니고 잠을 자는 것도 아닌 상태에 들어간다.

 

제11장 자료탐구

 

구약성경에는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에 관계를 말해주는 하나의 고대 신화가 나온다.

바로 야곱의 사다리이다.

 

유대교 속에 남아있는 초기 신비주의 전통 중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두 가지 전통

 

1) 요셉과 모세에 관한 이야기로 이집트에 기원을 두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유대의 병사들, 상인, 농부, 경영자들은 그곳에 둥지를 틀고 살았다.

 

2)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수에 기원을 두고 있다.

- 유대인의 정화의식의 기원은 바빌로니아의 침례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유대의 달력은 후기의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역법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 유대 랍비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한 제기들도 바빌론에서 기원했다.

- 유대인들의 탈무드 역시 초기 바빌론의 의학적 지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 바빌로니아 천문학 서적은 유대 공동체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흡수된 유일신에 대한 믿음 역시 고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유래되었다.

- 앗시리아들의 신인 아수르는 '하나', '유일한 것', '우주적인 신'을 의미한다.

 

제12장 천국

 

예수의 가르침은 두 가지로 나눈다.

대중을 위해서는 비유를 들어 말하고, 제자를 위해서는 더 깊은 가르침을 비밀리에 전한다.

천국을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는

"하나님의 왕국은 '여기 있다'거나 '저기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희 안에 있다.(누가 17장 20절-21절)

 

도마복음서에서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에게 묻는다.

제자 : 새로운 세상은 언제 옵니까?

예수 : 너희들이 찾는 천국은 이미 왔지만 너희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복음서에 천국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준다.

- 천국은 너희들 안에 있고 너희들 밖에 있다.

 

로마 교회의 실력자들은 추가적인 복음서의 존재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다.

그들이 한 일은 나중에 신약에 포함된 복음서들의 해석을 통제하고 덧칠한 것이 전부였다.

학자들과 복음서의 주석가들이 복음서에 진실이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 이러한 사실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 바티칸의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권력은 진리보다도 왜곡을 더 좋아한다.

 

제13장 예수문서

 

1947년 사해문서가 최초로 발견되었다.

1951년 교황청은 사해문서와 기독교를 연관 지으려는 사람들을 향해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것은 예수를 하나님이 독생자이자 신성을 가진 존재로 신격화하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절박한 문제였다.

 

성서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분야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학자와 성서 역사가란 사실이다.

순수한 역사가는 매우 드물다.

왜냐하면 순수한 역사가는 냉정한 시각으로 데이터를 분석하여 종종 교회에서 원하지 않는 결론을 도출해 내기 때문이다.

 

사해문서는 직접적으로 기독교에 영향을 끼친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한 신학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두 가지 문제점을 안겨준다.

1) 사해문서는 신약성경과 예수가 이전에 존재했던 메시아사상을 신봉한 유대 전통으로부터 나왔다는 방대한 증거를 제공한다.

2) 사해문서는 복음서들이 통일된 신학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신약의 복음서들도 니케아 공의회에서 명문화한 신학적 교리에 동조하지 않는다.

예수는 실제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는가? 에 대한 조제프 피츠마이어는 복음서들은 그러한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라고 답한다.

이것은 기독교에 있어서 아주 중대한 문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특성과 신성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요소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기독교 복음서들이 역사와 신화로 뒤섞여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기독교는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예수에 관한 전통은 유대적이지만 그리스도의 신화는 비유대적이다.

역사적인 예수와 믿음의 예수 사이에는 분명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바티칸에서 확정한 교리는 잘못된 가정, 뻔뻔스러운 거짓말, 고의적인 왜곡에 기초하고 있기에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현재 존재하고 있는 고대의 공문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원본 문서들은 바티칸, 이스탄불, 카이로, 런던, 파리, 베를린 및 많은 대도시에 흩어져 있는 거대한 도서관과 공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제14장 문서의 밀매

 

문서의 거래는 보통 매우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문서가 누구의 손에 넘어가는지 얼마에 팔리는지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

모든 거래는 구두로 진행된다.

암시장에서 사람들이 유일하게 믿는 것은 돈이다.

돈이 있는 곳에 고문서가 나타나고 세계 문화유산의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1970년 유네스코는 각국의 문화유산 보호차원에서 고대 유물에 관한 불법적인 거래를 근절시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국제회의를 열었다.

 

1995년 도난당한 문화재의 반환에 관한 문제를 주요 의제를 다루기 위해 로마의 국제법 분쟁 중재기관 유니드로에서 회의가 열렸다.

1) 유니드로 협약에서는 소장하고 있는 모든 유물들을 훔친 것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법안이 채택되었다.

- 합법적인 절차를 밟은 공식적인 발굴 작업에 의한 것이든, 약탈한 것이든 상관없이 모두 범주에 포함된다.

- 이러한 유물들이 순수한 동기에서 구입된 것들이라 하더라도 본래 그것들이 속했던 나라로 반환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 순수한 동기에 의해 구입된 것이라면 그 구입자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해야 한다는 규정을 첨가시켰다.

2) 고대 유물 수집가들은 더 깊숙이 지하로 숨어들었으며 거래는 더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예수가 그의 지지자인 열심당의 정치적 활동을 반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그 어떤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남아있는 자료들을 보면 그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면 그의 부활과 신성 및 삼위일체설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다.

 

예수 자신이 신으로 경배받기 원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어떤 증거도 없다.

그의 가르침은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의 영성을 계발하기 위한 촉매제 역할이었다.

 

역사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경전에 의지하는 종교'가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록된 문자에 의존하는 종교에서는 경전상의 왜곡과 해석과 번역의 정확성에 대한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경전은 항상 지식이 아니라 믿음에 의존하도록 조장할 위험이 있다.

 

페르시아 수피 제라루딘 루피의 말 :

이제 항아리에 담긴 샘물로는 충분치가 않다. 강으로 내려가자!

- 강물을 직접 마시는 것이 우리의 천부적이 권리다. 

- 누구도 우리로부터 그러한 자유를 빼앗을 수 없으리라!

 

4. 느낌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쓰인 엄청난 비판과 협박을 받았던 다빈치코드.

학문적인 책을 베낀 소설책이 더 많이 팔렸다.

 

이 책은 사해문서, 성경, 역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예수를 찾고자 한 책이다.

유대교에서 파생되어 나온 기독교의 시조를 찾아가는 역사고증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의 직전제자입장에서는 사도라 일컫는 바울이 이단아였을 것이다.

그러나 부와 권력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고, 로마 가톨릭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카톨릭의 권위와 권력을 위한 도구인 마녀사냥, 일반 대중이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쓰인 것을 무기로 

지식 계층은 일반 대중에게 왜곡과 믿음을 강요하게 되었다.

그저 가르쳐 준 대로 이해하고 알아듣고 믿어야만 하는 시대를 우리는 중세 암흑시대라 불렀다.

각 종교에는 성인이 있고, 그 성인의 말은 권위를 부여받는다.

그의 말은 무조건 옳은 것이 되어야만 했던, 그렇게 믿도록 강요받았던 일반 대중은 사고의 확장을 이룰 수 없었으리라.

 

종교를 확립하고 확장하기 위해 사람을 신과 동급으로 만들면 아주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누군가 질문을 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때

신의 뜻을 작은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라는 답으로 누를 수 있다.

사람이 말한 것은 다른 사람이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의 말이라고 해버리면 사람이 판단을 한다고 하더라도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런 분위기를 지금까지 만들어왔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과 그것에 이용당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은 

정의길, 유대인 발명된 신화.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을 읽은 후 

본다면 많은 배경적 지식을 쌓은 상태로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약성경도 참고 삼아 읽어보면 좋겠다.

그래야 이 책의 내용과 성경을 비교할 수 있다.

이 책 저 책 읽기 싫으면 그냥 이 책만 보아도 되고,

정의실, 유대인 발명된 신화만 보아도 좋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두꺼운 책이기에 

보려 한다면 구입하고 최대한 빠른 시간에 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시간을 두고 본다면 읽다가 그만두게 된다. 두껍다고 느껴져서.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위대한 성인은 문자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 제자 또는 후대가 문자 기록을 남겼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여러 사상가들의 이론이 있었지만,

권력에 의해 선택된 사상만 수명을 이어왔다.

 

하나의 사상이 이어져 종교라는 껍질을 갖게 되면 

세력을 추구하고 힘을 추구하며 부를 추구한다.

순수한 목적은 없어지고,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과 형식만 강조하게 된다.

 

성경을 알려면 성경만 알아서는 안된다.

성경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를 알아야 하고

그것의 토대가 되는 수메르, 바빌론, 이집트 등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유대의 역사와 로마의 역사 속에서 유대를 알아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성경에서 유럽으로 진출한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 분파의 권력 싸움을 보아야 하고

그 결과로 그 시대와 지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야 한다.

 

불경을 알려면 인도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인도의 신화를 알아야 하며

주변에서 세력을 다투었던 분파에 대한 역사도 보아야 한다.

다만, 불경이 조금 더 객관적인 것은 "여시아문~"으로 시작하는 구절이 있다는 것.

이것은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는 표현인데,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어서 기억이 왜곡될 수 있기에

최대한 기억의 왜곡을 없애고자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도 그러한지 검증을 하여 문자로 기록을 하였다는 것이 

좀 더 객관적 사실에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이슬람의 코란은 한 번만 들어보아서 뭐라 쓸 말이 없다.

 

종교의 영적 체험과 기적에 관한 것은 각 개인의 영역이기에 

그런 경험을 했다면 그것은 개인의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애쓰는 신들이 있고,

내면의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인간이 있고,

뜻보다는 형식에 얽매여서 변하지 않는 사상도 있고

이도저도 싫어서 얽매지 않는 인간도 있다.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재미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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