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거의 모든 나라는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당정치를 보여주는 과거가 있다.
조선시대 당쟁이 그것이다.
조선의 역사를 당쟁이라는 것으로 역사를 들여다본 책이 "당쟁으로 읽는 조선 역사"다.
사림의 등장부터 세도정치까지 권력 다툼이 어떻게 나라의 운명을 좌우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 모습을 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 준다.
역사는 순환한다고 한다.
역사의 순환고리에서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고 과거부터 이어온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이 책을 들어가기 전에 조선의 통치 이념인 성리학에 대해 살펴본다.
조선 성리학의 이념은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이치를 탐구하며,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도덕적 수양과 사회적 질서를 완성하려 했다.
조선 성리학은 국가이념으로 정치, 교육, 사회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주자의 철학을 기반으로 체계화되었다.
성리학은 리(理)와 기(氣)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인간은 리(理)를 깨달아 기(氣)를 정화함으로써 도덕적 완성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퇴계와 율곡 같은 학자들의 사단칠정 논쟁을 통해 심화되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며, 이는 리(理)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기(氣)의 탁함으로 인해 선한 본성이 흐려질 수 있으므로 수양을 통해 본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예(禮)는 개인의 도덕적 실천을 넘어 사회적 관계와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원리로 여겨졌다.
조선은 예를 통해 신분제와 가부장제를 강화하며 통치이념으로 활용했다.
성리학은 정치가 도덕에 기반해야 한다고 보았다.
왕은 천명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존재로 덕으로 통치해야 하며, 신하는 충을 다해 보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단을 피하고 중도를 지키는 중용의 덕목을 중시했으며, 학문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성리학은 예와 도덕적 원칙을 중시했으나 후기로 갈수록 실질적인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러한 경직성은 융통성 있는 사고와 실천을 억제하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의적 접근을 어렵게 했다.
성리학은 이상적인 유교사회를 지향했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상업발달, 농민의 빈곤, 외세의 위협 등 현실적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 부적응은 조선이 근대화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성리학은 오륜과 예를 통해 계층적 질서를 강조했으며, 이는 양반 중심의 신분제와 가부장제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며, 계층 간 갈등과 민중의 불만을 키우는 요인이 되었다.
성리학의 도덕주의는 이상적으로는 덕치(德治)를 지향했으나 현실에서는 양반 사대부의 권력 독점과 부패로 이어졌다.
백성의 삶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파벌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민생문제를 외면하였다.
1장 사림이 등장과 동서분당
1. 사림의 집권 배경
조선 초기는 공신 중심의 권력층이라 할 수 있는 훈구세력이 정치를 주도했다.
세조의 왕권찬탈과 훈구파의 권력족점에 대한 반발로 유학을 바탕으로 한 신진 세력인 사림이 대두했다.
연산군과 중종 시기를 거치며 사림은 조광조와 같은 인물을 중심으로 개혁을 시도했으나 훈구파와의 갈등, 사림 내부의 이념적 분열 이후 분당이 시작되었다.
2. 사림의 개혁과 한계
사림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도덕적 정치와 과거제를 통한 인재등용을 강조했다.
그 결과로 중앙 정계에 점차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사림이 내세우는 지나친 이상주의는 현실 정치와 거리가 있었으며, 권력투쟁의 미숙함으로 인해 1519년 기묘사화와 같은 대규모 숙정을 겪으며 그들의 개혁은 좌절되었다.
3. 동서 분당의 시작
사림이 집권한 이후 내부에서는 지역적, 학문적 차이로 분열이 발행하였다.
중종 말기와 인종, 명종을 거치며 본격화된 분열은 1575년 이조전랑 임용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김효원 계열의 동인과 심의겸 계열의 서인으로 갈라진다. 이들을 동인과 서인으로 나눈 것은 그들의 거쳐를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1장에서 사림의 집권과 당쟁의 기원 및 동서 분당의 역사적 의미를 짚었다.
사림의 집권은 조선 정치 구조를 성리학적 이상에 맞추려는 시도였지만 기존 훈구 세력과의 충돌, 사림 내부의 파벌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림의 분당은 조선 정치의 특징인 당쟁의 시작점으로 이것은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학문적, 지역적 기반을 가진 이념적 대립으로 발전한다. 이들 당파 간 갈등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진다.
2장 무너져가는 공존의 틀
1. 동인과 서인의 대립 심화
동인과 서인의 분열은 명종과 선조 시기를 거치며 더욱 격렬해졌다.
김효원을 중심으로 한 동인은 진보적이고 실용적인 노선을, 심의겸을 중심으로 한 서인은 보수적이고 원칙적인 태도를 고수하였다.
이들의 서로에 대한 배척은 정치적 공존 가능성을 점차 약화시켰다.
2. 북인과 남인의 분화
진보적이고 실용적인 노선을 추구한 동인 내부에서도 이념과 지역적 차이로 인해 이발의 북인과 정철의 남인으로 나뉜다.
선조 재위 시절에 정철이 서인과 협력하여 기축옥사에서 동인을 탄압한 것은 동인 내부의 균열을 심화시켰다.
3. 임진왜란과 당쟁의 격화
1592년 임진왜란은 조선의 정치적 혼란을 더욱 심화시켰다.
서인은 동인의 무능을 비판하고, 동인은 서인의 방해공작을 탓하며 국가 위기 속에서도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다.
전쟁 중임에도 당파 간 상호 비난과 책임 전가는 극에 달했으며, 이들 간의 공존의 틀은 완전히 무너졌다.
4. 권력 투쟁의 결과
전쟁 이후 의병장 등을 배출한 북인이 정권을 장악하며 서인과 남인을 배제하려 하였는데 이는 또 다른 갈등의 계기가 된다.
공존의 틀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당파 간 대립은 도덕적 명분을 앞세운 정치적 숙청으로 이어졌다.
2장에서는 당쟁이 점차 공존의 가능성을 잃고 극단적 대립으로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동인과 서인은 처음에 학문적 차이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제거하려는 극단적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이들이 공존의 틀을 무너뜨린 주요 요인으로 이념 대립과 권력 욕망을 꼽을 수 있다.
단순한 권력 다툼을 넘어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운 이념 투쟁의 변질은 정치적 안정성과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저해하였다.
3장 대동법과 군역 논쟁
1. 대동법의 도입배경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조선의 재정과 민생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기존의 공납제도는 지역 특산물을 세금으로 납부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백성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중간관리들과 그 조력자들의 착취문제가 심화되었다.
광해군 때부터 논의되던 공납을 쌀로 통일해 납부하는 제도인 대동법은 인조 때에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2. 당파 간 대립
대동법은 개혁파 서인이 주도했으나 남인과 일부 보수세력은 반대하였다.
개혁파 서인은 대동법을 통해 민생안정과 재정확충을 하려 했지만, 반대파는 지방 호족과 관료의 이익침해, 세수 감소를 이유로 강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당파 간의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3. 군역 논쟁의 재개
병자호란 이후 군사력 강화를 위한 병역 의무인 군역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병자호란 이후 급사한 형을 대신해 임금에 오른 효종은 북벌론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군 강화를 추진하고자 했다.
양반과 평민의 군역 부담을 조정하려 한 서인과 양반 특권을 유지하려는 남인과 일부 북인은 서로 다른 입장차로 충돌했다.
3장에서는 대동법과 군역 문제의 한계를 보여준다.
병자호란 이후 민생안정과 국가 재건이라는 조선 후기 개혁 목표는 당쟁으로 무산되고 당파 간 갈등은 실질적 문제 해결보다는 정치적 명분과 이익 다툼에 치중하면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기회를 놓친다. 당쟁은 정책차이가 아닌 기득권 권력 다툼으로 변질된다.
4장 공존에서 배척으로
1. 숙종 초기의 당파 상황
인조반정 이후 서인이 권력을 장악했으나 효종과 현종시기를 거치며 남인이 점차 세력을 회복한다.
숙종 초기에는 서인과 남인의 대립이 주를 이루었으며 당파 간 균형이 유지되는 듯하는 모습을 일시적으로 보여준다.
2. 경신환국과 당쟁 심화
1680년 경신환국은 남인을 축출하고 서인이 권력을 독점하는 계기가 된다.
1차 예송논쟁에서 남인 계열 윤휴 등이 서인을 비판하고 대립하자 서인은 남인을 역모로 몰아 대규모 숙청을 단행한다.
이 사건은 기존의 정치가 배척의 정치로 전환되는 전환점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3. 남인과 서인의 상호배척
경신환국 이후 서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잠시 재기하여 서인을 몰아낸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다시 복귀하며 남인을 점차 배척한다.
환국이 반복되면서 갈등은 화해 불가능한 수준으로 심화된다.
4. 숙종의 역할과 당쟁조작
숙종은 당파 간 균형을 유지하려는 의도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당쟁을 활용하였다.
숙종은 서인과 남인을 번갈아 지지하며 환국을 유도했고, 이것은 당파 간 적대감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4장에서는 조선 정치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진 사건을 보여준다.
경신환국과 같은 대규모 숙청은 상대 당파를 단순한 경쟁자에서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게 했다.
연속된 정권 교체로 인한 당파 간 보복과 숙청은 국가 운영의 안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시기를 시작으로 정책 논쟁보다는 권력 투쟁이 우선시된다.
배척의 정치는 조선 사회의 통합 가능성 상실로 이어졌으며, 숙종의 왕권 강화 목적은 당대에는 효과적이었으나 장기적으로 조선 정치의 분열과 쇠퇴를 가속화하였다.
5장 정치 공작의 악순환
1. 정치 공작의 시작
영조 즉위 후 노론과 소론의 대립은 정치적 음모와 공작으로 심화되었다.
노론은 권력 유지를 위해 소론을 견제하며 탄압했고, 소론은 이에 반발해 지방세력과 결탁했다.
2, 이인좌의 난과 공작의 결과
1728년 이인좌의 난은 소론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다.
노론은 이를 역모로 몰아 대규모 숙청을 감행하여 권력을 공고히 하였다.
상대 파벌을 제거하기 위한 모함과 정치적 공작의 악순환을 낳았다.
3. 탕평책과 공작의 변질
영조의 탕평책은 당파 간 균형을 의도했다.
그러나, 노론은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탕평파 인사를 배척하거나 회유하는 공작을 벌였으며, 소론은 생존을 위해 음모를 꾸몄다.
4. 악순환의 고착화
정치 공작은 상대 당파를 제거하는데 초점이 맞춰졌으며, 국가 운영보다는 권력투쟁이 최우선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상대를 제거하기 위한 모함, 과장된 혐의, 이인좌의 난과 같은 무력 충돌은 당쟁이 도덕적 명분을 잃고 권력 게임으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5장에서는 정치 공작의 악순환이 조선 후기 정치의 병폐이며, 탕평책조차 공작의 도구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쟁이 파괴적 권력 투쟁으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준다.
6장 과거사 정쟁
1. 과거사 정쟁의 연결
1762년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임오화변은 정조 즉위 시 정치적 논란의 중심이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론 벽파를 견제하며 개혁을 추진한다.
정조는 남인을 등용하며 노론의 권력을 분산하려 했으나, 노론은 사도세자 문제를 빌미로 정조와 남인을 공격했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과거사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어 정조의 개혁 추진을 방해하였다.
2. 정조의 개혁과 좌절
정조는 규장각과 신해통공 등으로 과거사 정쟁을 넘어 개혁을 시도했으나, 노론의 저항과 과거사에 얽힌 감정적 대립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6장에서는 정조의 개혁 추진 한계를 보여준다.
과거사 정쟁의 핵심 사례는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정조는 명예회복과 왕권강화의 목적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노론 벽파는 정조의 개혁을 저지했다.
정조 사후 노론이 이것을 명분으로 남인을 배척하고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
7장 새로운 미래를 위해
1. 정조 사후와 순조 초기
1800년 정조 사망 후 순조가 즉위하며 정조의 개혁을 계승하려 하였다.
그러나, 11세의 순조의 정치적 미숙함으로 실질적 권력이 노론 벽파와 외척세력에 넘어간다.
순조 초기 일부 탕평파와 남인은 정조의 유산을 바탕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노론의 강력한 저항과 안동 김 씨의 외척 세력으로 실패한다.
2. 홍경래의 난과 사회적 변화
1811년 홍경래의 난은 조선 후기 민생의 피폐와 당쟁으로 인한 정치적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다.
기존 당파 정치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으며, 새로운 개혁이 필요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노론은 이를 진압함으로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한다.
당쟁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 질서에 대한 열망은 노론과 외척의 권력 장악으로 좌절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세도정치의 전조가 보인다.
7장에서는 개혁을 통한 새로운 질서에 대한 열망이 실현되지 못함을 보여준다.
순조와 개혁파인 정치적 주체의 약세는 실질적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노론 벽파는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좌절은 조선 후기 개혁의 마지막 기회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8장 정당 정치의 붕괴와 세도정치
1. 세도 정치의 시작
순조대에 안동 김 씨를 중심으로 한 외척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노론 벽파는 외척과 결탁하여 당파 정치의 주도권을 잃었으며, 기존 정당 정치는 붕괴한다.
현종 시기에 안동 김 씨와 풍양 조 씨 등 세도 가문이 정국을 지배하여 왕권은 약화되었다.
당쟁은 권력과 이익을 위한 세도 가문 간의 투쟁으로 변질되었다.
2. 민생 파탄과 반발
세도 정치하에서 관리들의 부패와 착취가 심화되었으며 민생은 더욱 피폐해졌다.
1862년 임술민란 등으로 백성의 저항이 이어졌으나 세도 가문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3. 정당 정치의 붕괴
정당 정치의 붕괴는 조선의 정치 체제를 가문 중심의 세도 정치로 전환시켰다.
세도 정치는 국가의 운영의 효율성과 정당성을 상실하게 하고 조선을 외세 침략에 취약하게 만들어 버렸다.
8장에서는 조선 몰락을 초래한 세도정치레 대해 초점을 맞춘다.
당파 간 이념 대립이 약화되고 권력 투쟁이 가문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서 정치의 공공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세도정치는 조선의 정치적 퇴행현상이며 왕권약화와 외척의 권력 독점을 특징으로 기존 당쟁의 결과로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권력구조다.
세도정치는 조선 말기 국가 쇠토의 결정적 요인이다.
세도정치에 대한 백성의 저항이 있었지만 근본적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
세도정치라는 부패한 체제는 조선의 몰락을 초래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들
양당이 국회 의석을 대부분 차지하며 정책 대결보다는 정권 쟁취, 지역주의, 계파 갈등을 보여주는 오늘날 정치 모습이 투영된다.
잦은 정쟁과 정치적 양극화는 국민의 정치 불신을 높이고 국론을 분열시킨다.
실질적인 민생 문제 해결보다는 권력 투쟁에 치중한다.
현대 정치의 진영논리와 패거리 정치의 반복,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모습은 조선의 당쟁이 가져다준 폐해를 답습하는 듯한 모습이다.
조선의 당쟁은 인간의 욕망과 정치적 갈등이 얽힌 보편적 현상이다.
당쟁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외세의 개입과 국력 약화로 이어졌던 점을 상기해야 한다.
오늘날 조선 후기와 말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당쟁이 초래한 혼란과 과정을 살피고 교훈을 찾아야 한다.
공존의 정치가 배척의 정치가 된 현실은 안타깝다.
정책 대결이 주가 되어야 하는데 권력 투쟁이 주가 된 현실이다.
배제하고 배척해야 할 적으로 규정짓지 말고,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최대한 이익이 되는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권이 교체되면 전 정권의 장점은 흡수하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국가를 운영하면 된다.
전 정권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국민과 국가는 허울뿐인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흘러온 역사를 통해 배우는 사람이 있고,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이 있다.
역사를 통해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계획하라 한다.
과거의 역사를 살펴 오늘날을 판단하고 조심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은 조선 후기 당쟁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의 한 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지만, 역사의 한 부분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 책은 오늘날을 비쳐보는 과거로의 여행이다.
모든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 방향선에서 새로이 살필 것은 없는지 참고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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